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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위안
자매라 하건 수도사라 하건 벽이라 하건 간에 누구라도 30미터 높이의 경 사면을 예상하며 기꺼이 바다로 나가려 하지는 않는다. 괴물 파도의 존재가 더 이상 부인되지 않게 된 이후로 사람들은 그것이 극도로 희귀한 것이 리라 는 점으로 위안을 삼았다. 이것은 잘못된 위안이었다. 그동안 유럽의 전파탐 지 ‘환경인공위성(EWSAT)’이 밝혀주었듯이, 최소한 두 개의 그런 거대한 파도가 매일 세계의 바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해상사고로 배가 실종 되는 통계를 연구해보면 고통스럽게도 변종파가 오늘날까지 얼마나 많은 생 명을 요구해왔는지가 분명해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사례로 여 겨지는 것이 독일의 화물선 ‘뮌헨’ 호이다. 이 배는 1978년 12월 아조렌 군도 (Azoren),76) 북쪽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는데 괴물파도에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35미터 파고의 폭풍파도는 결코 희귀한 경우가 아니다. 특히 나 남아프리카 앞바다, 아프리카 동쪽 바다, 알래스카 만, 플로리다 연안, 일 본 남동부의 바다가 그렇지만, 또한 북대서양에서도 그런 파도와 마주치는 일이 상당히 규칙적으로 일어난다.
그런 파도의 빈도는 과거에 사람들이 기준으로 삼고는 했던 선형 적(線形的) 인 파도이론과 뚜렷하게 모순되는 것이다. 선형성이란 수학원리로, 다시 말 하면 연속의 예측에 관한 학설이다. 예를 들어 아이작 뉴턴 경과 같은 사람의 세계상은 선형성에 대한 선호를 통해 분명해진다. 천재의 예술작품에 나 있 는 옥에 티 같은 것이다. 시공 속을 경고}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말하자면 선 형적이지 않은 것이다. 예언가나 통계학자들이 아무리 선형성이 이른바 장 점들로 유인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여기기를 즐겨 한다고 해도 말이다. 선형 적인 우주에서 라면, 예를 들어 미 래를 나다본다는 것은 결코 문제도 되지 않 올 것이다. 그저 현재의 상태를 고조시켜 가면서 추세들을 수학적으로 산출 해보기만 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면 심근경색으로 예상치 못하게 돌연 사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폭발하는 우주선이라든가 자칭 충심의 배우자라 는 사람들의 뜨거운 하룻밤(One-Night-Stands) 같은 일도 없을 테며, 또 소련 도 하룻밤 사이에 붕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과의 엉킴을 기억하고 있고 또 그중의 어딘가에는 비정상이라든가 규칙의 예외 및 누적 작용이나 붕괴와 같은 현상이 매복하듯 숨어 있음을 안다. 오늘날까지 우리 가 그런 엉킴 안으로 진출해 들어간 것은 그저 시초에 불과할 뿐, 그것을 속 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변종파 가 왜 그렇게도 자주 등장하는가에 대해 과학은 수수께끼에 직면해 있다. 통 용되는 예측모델을 배경으로 하고 보면 설사 역방향의 해류라든가 급속한 풍향의 변화나 중첩됨과 같은 혼돈스런 요인들까지 포함시킨다고 할지라도 괴물 파도는 훨씬 더 드물게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세계는 이제까지 우리가 믿어주려 했던 것보다도 그 성질이 훨씬 덜 선형적이다.
투린대학교의 알 오스본(Al Osborne) 교수는 그 비밀을 철저히 파헤쳐 내기 로 다짐을 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양자물리학에서, 다시 말해 비선형의 간 판 노릇을 하는 분야에서 도움을 구한다. 그중에는 유명한 슈뢰 딩거 방정식 (Schr6dinger-Gleichung),77)이란 것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입자들은 그 움직 임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리만치 갑자기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고는 한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거시적인 구조로 옮겨놓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오스본은 그래도 파도가 예기치 않는 상태의 변화를 일으킬 때 그 움직이는 모습을 보 고 어느 정도 비슷한 점들을 찾아낸다. 파도의 움직임은 예측치 못하게 생겨 난다. 파도는 번개처럼 재빨리 주변에 있는 파도의 에너지를 통합해 들여서 쭉쭉 치솟으며 쌓인다.
오스본은 비선-형 공간 속의 변종파를 예측해보았던 것 이며, 이때 무엇보다도 메가급의 격한 파도(Megabrecher)를 재구성해내기도 했었는데 이것이 1995년 드라우프너 석유시추기지(Draupner-Olpkntform)1* 를 뒤흔들어 놓은 적도 있었다. 그로 인한 결론은 비단 항해만 불안하게 만드 는 것이 아니다. 완만한 경사를 가진 산더미 같은 파도로 선형적이 며 안정적 인 파도가 있는가 하면, 마찬가지로 또한 언제 어 떻게 생겨날지 그 어 떤 예 보 범위도 벗어나 만들어지며 빈도를 따져봐도 제멋대로일 뿐인 급경사의 벽과 같은 파도도 존재하니까 말이다.
“두 가지 종류의 파도가 존재한다고 상상하니 아주 흥미롭지요.” 오스본 교수가 말하며 가만히 미소를 짓는다. 그가 홍미로워하는 것은 변종파의 충 돌에너지가 제곱미터당 대략 100톤가량이나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조선업 자라면 이때 눈에서 불꽃이 튀게 된다. 퀸 메리 2호(Queen Mary 2) )라면 더 구나 괴물 파도에 맞서서도 끄떡없어야 할 것이다. 어 떤 변종파가 닥칠지도 모르니까 그 배의 선교는 40미터나 되도록 높게 자리 잡는다. 선수나 선미도 두툼한 철판으로 만들어진다. 만드는 사람에게 말하라면 그거야말로 미친 짓일 것이다. 또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깨질 수가 있는 법이지, 그렇지 않 다면 그리 많은 일이 생겨나지도 않을 것이다.‘퀸 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오스본에 따르면 변종파는 가능한 모든 것들을 통해서 발생할 수가 있다. 어떤 때는 역방향의 해류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해저의 급격한 상승 때 문이기도 하며, 때로는 알려진 것이건 알려지지 않은 것이건 기다란 방정식 들로 받아 적어야 하는 온갖 요인들의 진기한 공동작용 탓이기도 하다. 해협 내에서 파도는 빛처럼 묶일 수가 있다. 아니면 바람이 급작스레 몰아친다. 또 한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다양한 유형의 파도들이 하나의 변종파로 융합되 기도 한다. 작은 파도는 느리고 큰 파도는 대단한 속력을 보인다. 그처 럼 서 로 다른 파장의 파도들이 서로 마주칠 때면 아주 짧은 순간에 동시발생의 효 과가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근해산업에도 그 모든 것들은 얼마간 골칫거리가 된다. 보통 시추기 지는 해수면에서 35미터 위에 위치한다. 일컬어지기로는 시추기지가 이런 파고의 파도를 만나는 것은 100년에 한 번 꼴이라고 한다. 하지만 통계는 신 중하게 써먹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믿자면 결혼한 부부마다 아이가 한 명 반이고 60퍼센트의 사람들이 개를 가지며 1 과 3분의 1 대의 자동차를 몰 고, 또 한 사람당 음료수를 평균 10센티미터씩은 마실 수 있다. 변종파는 그 것이 어디서 어떻게 출현할지에 대해 그 어떤 규정도 불허한다. 시추대를 세 우는 사람들도 일 년 중 그런 파도가 두세 번쯤 엄청난 분노를 일으킬 수 있 는 반면에 또 그 다음 해에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배워두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시추대들에도 레이저로 조정되는 파도탐지레이더 장치가 설치되었다. 그럼으로써 가뜩이나 소중한 지식들이 얻어진다. 물론 레이저가 알려주는 것은 역시 시추대로 밀려오는 것뿐이기는 하다. 충돌을 피할 수 있지는 않은 것이다. 괴물이 바다에서 솟아오르면 남은 일이라고는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 아니 면 나중에 헬리콥터를 타고 드넓은 지역을 뒤지 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