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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소한 공간의 거주지들카테고리 없음 2020. 9. 25. 08:00
협소한 공간의 거주지들
물론 유달리 많은 종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장소들도 있다. 당신 이 그런 곳에 가보려면 비행기표를 끊어 몰디브나 오스트레일리아, 홍해나 카리브 해 중에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당신한테 잠수장비를 걸쳐주고 가장 좋은 장소를 안내해줄 사람만 있으면 된다. 당신은 너무 깊게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산호는 햇빛 속에서 번성하니까. 초란 열대의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F기)다. 수중에 있는 빅 애플 (Big Apple)같은 곳으로서 극히 협소한 공간의 거주지들이며 수백만의 건축가들이 지은 것이다. 그들은 얼마든지 디자인상을 받을 만도 하지만 그 런 것에는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방문하러 가는 참이다. 그리고 우리는 벌써 부글거리며 물갈퀴를 부드럽게 움직여 방금 해수면 아 래로 나란히 유영해 들어가는 중이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어서 첫 햇살로 얕 은 바다가 옅은 빛 속에 드러나 보인다.
이 시간이 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지 지 않는 눈꺼풀을 비비며 알람시계를 더듬다가 사무실 생각으로 심하게 짜 중이라도 부릴 즈음이다. 어머니들은 잠에서 깬 아이들의 투정소리를 들을 테고 독신이라면 배고픈 고양이의 야옹거리는 소리에 부대끼고 있을 것이 다. 뉴욕, 바르셀로나, 함부르크, 모스크네‘, 싱가포르 등의 세계 도처에서 어 둠이 물러가자마자 차례대로 사람들이 깨어난다. 다만 산호폴립들만은 서로 달콤한 꿈을 꾸기를 바라며 잠에 빠져든다.223)낮 동안 초(建)는 온종일 물고 기나 갑각류, 그리고 잠이 덜 깬 듯 자신의 굴이나 바위틈서 리를 떠나온 연 체동물과 극피동물들의 독차지가 된다. 지느러미를 잠깐씩 흔들며, 더듬이 를 내뻗거나 집게발을 내밀며 소란스런 생활이 시작된다.
석회석 도시가 러 시아워 채비를 하는 것이다. 건축의 다채로움이란 점에서 인간이 세운 그 어떤 메트로폴리스도 저 리가라고 할 만한 도시가 깨어나는 것이다. 산호는 잠이나 자는 멍 청 이 인가? 왜 그렇겠는가! 차라리 인정받지 못하는 천재라고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들의 놀라운 건축물이 꽃무늬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그들을 식 물로 간주한다. 그런데 이처럼 무성하게 번성하여 나무 같아 보이는 거대한 구조물들은 산호가 아니고 그들의 주택들이다. 산호 자신은 그 내부나 표면 에서 산다. 큰일을 성취하는 데 반드시 키가 크지 않아도 된다는 산 증거라고 나할까.
그만큼 산호폴립은 아주 왜소하다. 녀석은 해파리나 말미잘이 속해 있는 자포동물문의 조그만 자루처럼 생긴 유기체이다. 그 자체만 관찰해보면 녀 석은 작은 문어, 혹은 눈 없는 두족류들과 흡사하고, 대체로 많은 촉수를 가 지지만 적은 것도 있다. 입은 구멍처럼 생겼斗. 그 둘레로 촉수들이 모여 있 고 촉수에는 현미경으로나 보일 정도인 수백만 개의 체낭으로 이루어진 작 은 작살들이 돋아나 있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앞으로 튕겨 나오면서 희생자 의 몸속으로 뚫고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 독이 든 가느다란 실들이 휘감기며 먹이를 마비시키고, 그런 다음 먹이를 목구멍으로 끌어들여 쑤셔 넣게 된다. 배설을 위해서는 웅가가 나오는 항문이 따로 마련된 것이 없어서 그냥 다시 나오기도 한다. 설명은 여기까지다. 이 작은 건축가의 몸구조에 관해서는 말 하지 않은 것이 꽤 많다. 과학에서는 그 밖에도 산호란 말 대신 코엘렌테라타 (Coelenterata)라는 말을 쓰는데, 장(腸)과 구멍을 뜻하는 그리스어 개념들을 합친 말이다.
그러니까 장 구멍이란 말이다. 어이, 장 구멍! 뭔 일 있어? 그러고 보니 차라리 산호가 낫다. 그런데 산호폴립의 체내 화학은 엄청 정교하다. 녀석의 체벽 속에는 나노 크기의 단세포조류인 갈색공생조류(Zooxanthellen)가 무수히 많이 살고 있다. 녀석의 조직 1 제곱센티미터마다 대략 백만 정도의 부지런한 이 단세포생물 이 사는 셈이다. 갈색공생조류는 마음껏 광합성을 하면서 포도당을 합성하 며 산소를 분리해내는데, 폴립은 여기서 이득을 본다一이 두 가지를 합치면 녀석 먹이의 90퍼센트 가까이 되며 이 에너지만 가지고도 녀석은 석회골격 을 충분히 지을 수 있다. 자포동물은 그 대신 갈색공생조류에게 이산화탄소 를 제공하는데, 이것은 녀석이 칼슘이온의 도움을 받아 골격의 구조물질인 탄산칼슘으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넘쳐나는 이산화탄소는 조류들이 다시 광 합성을 하는 데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많이 얻어 가면 갈수록 탄산칼슘의 형 성은 그만큼 더 신속하게 진행된다. 이익 공동체가 잘 작동되 어서 산호폴립들이 그 공생자들의 협조를 받으면 그들이 없을 경우보다 열 배는 더 빠르게 건축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다. 그러나 갈색공생조류들은 햇 빛 속에서만 광합성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산호퇴 적물(Korallenbank)이 붙 어 있는 곳은 수심 50미터 위쪽이다. 광합성 과정은 다만 밤에만은 잠시 중단 되는데, 그러면 폴립의 세포 내에서 석회가 형성되는 것도 실제로 감소한다.
산호폴립들이 탄산칼슘을 집적시켜서 어떻게 골격을 짓는지는 아직도 충 분히 다 해명되지 않았다. 많은 점들로 보아 본래의 건축활동은 밤에 수행되 는 것이 맞는 듯하다. 다시 말해 그런 때는 폴립이 바깥쪽으로 몸을 까뒤집어 촉수를 해류 속에 있도록 유지시킴으로써 제 석회집을 떠나는 것이다. 이 독 거동물들 모두가 몸 조직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녀석은 제 아파 트를 완전히 떠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녀석 이 밤에 활동하는 시간 동안에는 녀석의 밑에 공동(空洞)이 생긴다. 이제 녀석은 낮의 넘쳐나는 석회를 분비하 게 되는데, 석회가 체낭에서 살짝 흘러나와 거실 허방 속으로 들어가고 거기 서 굳어진다. 다음날 아침 녀석이 되돌아올 때면 녀석 이 사는 곳은 전날보다 얇은 석회충만큼 더 높아진 것이다一그러면 우리가 산호라고 일컫는, 그 무 수한 독거동물들에서 합성된 엄청 커다란 구조물들도 조금은 더 자라난 셈 이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변조건들이 맞아야 한다. 우선 수온이 섭씨 20도 아래로 내려가면 안 된다. 그보다 높은 것이 이상적이다. 그래야 비 로소 폴립은 그 재임대자인 단세포생물들과 더불어 최고로 번성하게 된다. 그 밖에 염분도 충분히 있어야 한다. 심지어 거의 모든 산호의 고향이라 할 열대지역들에서라도 하천에서 엄청난 담수가 바다로 들어온다거나 산업폐 수가 유입되기라도 한다면 녀석들의 일은 허사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폴립 도 관광객들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 점에서는 공통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이 양자가 다 깨끗하고 맑은 물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었다고 전제하면, 경이로운 기적이 줄곧 일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제까지 알려진 700종의 폴립들이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예술작품을, 이를 데 없이 풍부한 형태들로 숨 막히게 아름다운 생물학적 다 양성의 매력을 지닌 예술작품을 짓게 되는 것이다. 바다에서 산호퇴적물이 차지하는 생존공간은 1 퍼센트도 안 되지만, 그와 같은 생물 다양성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산호도시에서 우리가 하루를 지 내려는 것이다. 당신도 감동을 먹게 될 것이다. 여기엔 헬스클럽까지 있다!